"성장·혁신 주체는 기업 … AI 키우려면 데이터규제 확 풀라"
관세협상·가계빚·노동이슈…
복합위기 정부 고충은 공감
인공지능 육성과 넷제로 달성
데이터활용·개인정보 보호…
곳곳서 정책목표·수단 엇박자
신산업에 재정 푸는 美처럼
韓도 기업 성장기반 닦을 때
노란봉투법엔 기업탈출 우려

"정책의 목표와 수단 사이에 정합성이 부족한 모습이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강성진 고려대 교수·차기 한국경제학회 회장)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의 정책을 진단하기 위해 모인 학계와 정책 전문가들은 새로운 정부의 성공을 위한 조언을 쏟아냈다. 이들은 이재명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협상, 높은 가계부채, 노동계의 대선 청구서를 받아든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 탄생한 태생적 한계에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100일간 추진된 경제·산업 정책의 기조와 방향에 대해 정책이 상충하거나 그것을 뒷받침할 규제개혁 등이 적절히 동반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6일 한국경영학회와 매일경제신문이 공동주최한 '신정부 100일 경제·경영 정책 토론회'에는 한국경영학회는 물론이고 한국행정학회, 한국경제학회 주요 인사들이 참여했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인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이날 서울 중구 퇴계로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인공지능(AI)을 육성한다면서도 뒷받침할 전력과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책과 수단 사이에 정합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AI를 육성하려면 당장 2030년에 지금의 2배나 되는 전기가 필요한데, 이걸 온실가스 배출 넷제로를 달성하면서 어떻게 할 건지, 또 AI를 통한 신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면서 개인정보보호를 강화하겠다고 하는 점도 문제"라면서 "전체 그림은 있는데, 각각이 잘 조율된 게 아니라 흩어져 있다"고 꼬집었다.
이윤수 서강대 교수도 "기업이 데이터를 확보해야만 AI가 육성되는데, 이 부분에서 매우 부족하다"면서 "CCTV를 통해 재난이나 범죄에 대처하는 분야가 굉장히 뜨거운데, 이걸 우리는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못하고 중국에서 데이터를 학습해서 가져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재정을 통해 기업을 돕는 산업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교수는 "올 1월 미국경제학회에서 굉장히 관심 있게 본 내용이 산업 정책을 부활했다는 것"이라며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다른 선진국들도 산업 정책을 통해 기업을 키우려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정부 재정을 통해서 기업의 성장 기반을 만드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권마다 나오는 규제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정광호 한국행정학회장(서울대 교수)은 "성장과 혁신은 기업이 주체가 되고 정부가 불확실성을 줄여줄 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구체적으로 "AI 기본법은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법률인데, 개인정보를 사용할 때 규제가 촘촘해서 쓰기 어렵다. 행정안전부도 자기들이 가진 공공데이터를 실질적으로 지원할 방안이 없고, 규제를 줄여야 할 상황에서 각 부처가 칸막이를 내려놓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상법 개정을 통한 주주우선주의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양희동 한국경영학회 회장(이화여대 교수)은 "소유 구조와 지배 구조를 혼동하고 있다"며 "지배 구조를 일반인들은 그냥 재벌의 지배 구조로 이해하는데, 기업의 거버넌스 측면을 개선하자는 것이지 자본주의 원리 자체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 또는 이념주의의 관점에서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왔다. 이의영 경실련 공동대표는 이재명정부의 정책과 법제개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노란봉투법은 현 정부의 독자적 정책이라기보다 계엄·탄핵 전에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입법한 법안에 대해 전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현 정부에서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 입법된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노란봉투법에 담긴 '사용자' 개념의 과도한 확대에 대한 우려도 이어졌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란봉투법은 어떤 세부 지침이 나오더라도 사용자의 범위가 상상 이상으로 넓어질 수밖에 없는 법"이라며 한계를 짚었다. 그는 확대된 사용자 개념이 가맹사업법으로 확장돼 가맹점에 단체협상권을 부여하는 등 일반 상거래 관계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이 교수는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결국 대기업의 역외자산 증가를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희석 기자 / 홍혜진 기자 / 구정근 기자 / 사진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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